“선생님! 또 해요!”, “선생님! 우리 모둠 다 됐어요. 발표할래요.”, “선생님, 내 말을 안 들어 줘요!”, “선생님! 저는 2단 조각이 될 거에요.”, “선생님! 꼭 모둠끼리만 해야 돼요?” 연극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의 목소리와 동작이 수업 시간 내내 물결치듯 흐른다.
처음 연극예술강사를 시작했을 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수업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매달리다보니 아이들이 수업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시간이 많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12년차 연극예술강사 생활에 접어들면서야 연극수업은 아이들이 주인공이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실에서 함께하는 연극수업은 아이들 스스로의 몸이 가장 중요한 표현수단이다. 수업 도입에는 동작을 만들어 표현하는 활동을 하고, 이후에 점차 동작을 확장하고 구체화 시키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실을 움직이는 인형사가 되어 친구를 인형처럼 움직여보기도 하고, 거울속의 나를 바라보며 표정과 동작을 연결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동작을 구성하면서 아이들은 몸으로 표현하는 재미를 스스로 찾아간다.
나의 연극수업은 개별활동, 짝활동, 역할 바꾸기, 모둠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통 모둠활동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첫 만남 수업에서 모둠을 구성하는데, 이 모둠으로 연극수업 대부분의 협동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연극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어야 한다. 연극수업의 최종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모둠원들간의 협동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엔 갈등을 겪는 모둠도 있지만 구성하고,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의 관계가 끈끈해지고 서로의 장점을 알게 된다.

모둠활동은 아이들 사이의 역할을 설정하고 역할에 어울리는 활동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는데 적합하다. 나의 경우에는 연극수업 과정 대부분을 아이들 스스로 만들게 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강사보다는 모둠원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처음 예술강사를 시작 했을 때는 내 뜻대로 아이들을 움직이면 더 멋진 장면을 만들 수 있고 모든 아이들이 작품을 한번에 완성해 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고 연극예술수업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연극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표현의 자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대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며 숨을 고르고 발동작 하나에도 생각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표현의 자유와 권한을 부여하자 신기하게도 놀라운 표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주일에 한 시간을 만나는 데도 아이들은 시간을 따로 쪼개어 모둠원들과 대본을 써내려가고 발표수업에 맞는 가면을 만들어 냈다. 배경음악을 정하면 아이들이 배운 악기로 연주를 준비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모둠의 의도대로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함께 창작하는 즐거움을 알아간다.
하얀 백지를 주고 “맘대로 그려봐”라고 하면 머뭇거리는 것처럼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처음 연극수업을 시작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게 머뭇거린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차근차근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주면 아이들은 표현하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지금 출강하는 학교 중 두 곳은 2년, 3년 계속해서 나가게 되었다. 2학년이던 학생들이 3학년이 되어 연극수업을 다시 듣는데, 학생들은 이미 연극수업의 방식을 이해하고 있고, 어떻게 표현할지 기술적인 부분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연극수업의 심화단계까지 시도할 수 있었다. ‘심화’라고 해서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연극창작의 근본적인 재미를 많은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잘하는 아이들 몇몇이 이끌어가는 연극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내는 연극, 수업의 의미를 모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는 연극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주제설정, 대본쓰기, 무대소품, 배경음악 등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아이들 스스로 해내도록 격려하고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나는 매일 다른 학교, 다른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향한다. 독특하고 개성 강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성장하는 곳.
실패해서 울고, 하기 싫어서 떼쓰고, 심통이 나서 짜증을 내도 함께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있는 곳. 친구들의 사소한 동작을 눈여겨보고 들려주며 얘기에 공감하고 퍼즐을 맞추듯 생각과 생각을 이어가는 장소이다. 무엇보다 어리다고 무시할 수 없는 과감한 상상력과 행동력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교실에서 만나는 나의 어린 친구들 때문에 오늘 하루도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