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예술 강사로 활동한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지난 20년간 만화가로서의 경험을 전수해 주겠다던 나름의 호기는 첫해가 끝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당황과 좌절로 보냈던 2011년 예술 강사 첫해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좌절은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무엇을 가르칠까?’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었다.

처음 만화예술분야의 강사가 되었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만화의 경험을 전수하고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될 것으로 착각했다. 내가 살아왔던 지난 20년의 작가경험이라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만화의 세계였다. 하지만 학교는 달랐다. 아이들은 내가 꿈꾸던 만화가를 꿈꾸지 않았고, 만화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궁금증도 없었다. 그저 ‘만화는 재미있는 것’이라는 기대에 찬 눈빛을 반짝 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로 다른 눈높이의 차이는 ‘만화수업을 재미없는 수업’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저 만화로 재미있게 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겨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존 강의 프로그램들을 대대적으로 손보았고, 2012년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만의 만화 강의를 시작했다. 반응은 물론 좋았다. 아이들은 쓸모없는 폐품을 이용하여 직접 마녀가 되기도 했고, 때론 전사가 되기도 했다. 만화와 재미있게 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2013년에는 또 다른 뭔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제주도의 아이들에게 제주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찾아냈던 것이 ‘제주신화’였다. 제주 신화를 만화 수업으로 연결하기 위해 같은 만화분야 전공의 선생님들과 의기투합해 제주도를 대표하는 ‘영등신화’를 소재로 절지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만나 몇 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부족하나마 결과물이 만들어 졌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만화수업에 ‘제주신화’를 응용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생겼다. 그렇게 2013년은 ‘영등신화’ 이야기를 만화로 만드는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2016년 올해, <강림 차사본풀이>를 주제로 아이들과 수업을 한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본풀이의 내용을 미리 정리해 볼 수 있도록 지도했다. 제주도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 전, 아이들은 <차사본풀이> 속의 저승사자를 어떻게 그릴까? 궁금해 하는 호기심도 보였고, 저승사자를 캐릭터로 그려보는 수업 결과 아이들의 상상력에 다양한 이미지의 저승사자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낯설었던 제주신화 <차사본풀이>는 이젠 아이들의 머릿속에 익숙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떤 아이들은 동화로, 어떤 아이들은 학습만화로, 또 어떤 아이들은 이야기로 경험한 것을 꺼내어 제주의 이야기로 알려주자 아이들의 눈이 또 다시 반짝거린다. 그냥 남의 이야기, 혹은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제주도의 신화라는 사실에 아이들의 흥미를 끈 것이다. 그렇게 제주신화를 만화로 그리는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신화가 무엇인가요?”
아이들에게 물으면 제일 먼저 “뻥이요!”하는 대답이 나온다.
“그래, 뻥이다!” 재미있는 ‘뻥!’
우리 선조들이 재미있게 만들어 놓은 ‘뻥!’을 가지고 좀 더 재미있게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