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다락에 숨겨둔 ‘보물 꿈 꾸러미’를 들고 오늘도 나는 ‘룰루랄라~’ 꿈 배달을 나선다. 배달받은 그 꿈이 어떤 이의 마음속 무엇인가를 꿀렁이게 만들고, 그것을 계기로 수신인 자신의 꿈을 탱글탱글 영글게 하는 목표를 갖게 된다는 기대로 말이다.

‘연극놀이터 와랑와랑’은 2016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혼디오니소스축제’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단체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와 같은 지원 사업뿐 아니라 지역아동센터, 학교에서 혹은 작은 도서관 등에서 다양한 연극놀이, 연극치유 활동을 한다. 무대와 사람만 있다면 상상의 세계를 무한히 펼칠 수 있는 연극을 기반으로 하여 참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확장해나가는 경험을 하고, 때로는 자신도 모른 채 살아왔던 자신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포함한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 숨겨진 것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연극이 예술교육 장르로서 갖고 있는 막중한 의무가 아닐까 하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연극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어쩌면 나는 선택받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행운아다.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의무감, 혹은 포기해야하는 부분을 감수하고도 말이다. 마흔이 된 지금의 나는 아직도 새로운 연극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새로운 대상자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마치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천하의 바람둥이다. 매번 사랑에 금방 빠지기 때문이다. 김치 싸대기를 맞아도 좋을 날 바람둥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연극이 좋았다. 공연티켓을 가지고 극장로비에서 공연시간을 기다리는 순간, 아마추어 배우로 학교발표회 무대 위에 올라가기 전 그 떨리는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좋았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대체 왜 나는 연극이 이렇게 좋은 것일까?’
관람을 할 때는 어두운 객석에서 무대 위 배우들에 몰입하는 순간 극장 밖의 나를 잊을 수 있어서 좋았고, 연극공연을 직접 할 때는 새로운 나,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과 만나게 되면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어 삶에 활력이 생기는 것이 좋았다. 신세계를 개척하는 탐험가의 마음이랄까. 그러면서 다양한 배우훈련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감수성 훈련 등 연극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연극교육가로서의 첫 출발이 되었다.

아티스트와 교육가의 경계에서 중심을 잘 잡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예술교육가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아티스트로서의 자기표현 욕구 혹은 고집 등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교육대상을 바라보는 교육자의 마인드가 아닐까.
단순히 기능을 전달하는 전달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교육받는 이들의 마음 변화를 읽어낼 줄 알아야하는 것, 예술교육가의 필수조건일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대상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소통하며,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적당히 변용할 줄도 알아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매일 노력해야하고 공부해야하고 깨어 있어야한다.
참 피곤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즐길 수 있기에 나는 아직도 일이 신나고 재밌다.
그 재미있는 예술교육을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신나고, 아름다운 자연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매번 달라지는 교육대상자와 교육주제에 따라 내용이 상이해지는 연극교육프로그램에서 기획은 제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연필을 들고 종이에 끄적끄적해 보다가 안 되면 무작정 차를 끌고 나간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한적한 바다, 해질녘 퐁낭아래 혹은 올레의 돌담 등 꽂히는 곳이 나타나면 그곳에서 그 분을 기다린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주십사 하고⋯ 신기하게도 자연에 취하다 보면 ‘퍼엉’하고 생각이 떠오른다. 제주의 자연이 나의 램프의 요정처럼 나에게 영감을 준다.

이번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혼디오니소스축제’ 프로그램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작년 가을께 억새밭을 지날 때, 하얗게 나풀거리는 고대 그리스식의 의상을 입고 시공간을 초월한 디오디소스 축제를 열어볼까? 포도주 대신 포도주스를 나누어 먹으며⋯ 고대 희랍극을 통해 우리 삶의 희비극을 들여다보고 인문학적인 지식도 쌓고, 가면을 만들어 숨어있는 나의 내면의 보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여럿 생각이 떠올랐고 그것이 16차시 프로그램이 되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니 제목이 정해졌다. 제목이 정해지니 세부적인 이야기들이 술술 풀렸다. 고대로 돌아가 시간여행도 하고 그리스 희비극을 현재의 내 삶과 연결하여 내 삶의 희비극도 들여다보면서 우리만의 축제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4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혼디오니소스 축제> 1기의 참여자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함께 어우러져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되긴 했으나, 실제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니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어 오히려 그들만의 유대감이 형제애처럼 생기는 듯했다. 16회 중 8회를 축제 준비시간으로 할애하였는데, 두 달에 걸쳐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고 드디어 어떤 모습, 어떤 내용으로 축제를 펼치게 될지 구체화되었다.

학생들 본인들이 직접 만든 가면을 쓰고, 화려한 색의 천을 몸에 두르고, 그리스 시대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교육장소가 있는 삼도2동 문화의 거리에서 탑동 일대까지 거리퍼레이드를 하기로 하였다.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 및 초대장, 거리퍼레이드의 루트 등 의견을 조율하며 참여자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 낸 과정의 결과였다.
참여자들은 서너 모둠으로 나누어 각자 예언의 쪽지를 가지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탁을 내리며 포도 주스(디오니소스 축제 때 마시던 포도주 대신)를 마셨다. 토요일 주말인데다 퍼포먼스를 여는 장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칠성통’이라 거리는 북적였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더군다나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상한 가면과 옷을 걸친 모습으로⋯ 그러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과 신탁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소통하고, 함께 웃고 새로움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이 든다.

2016년 10월, 현재 <혼디오니소스 축제> 2기를 진행 중이다. 참여하는 사람이 다르기에 내용도 다르고, 축제 준비도 다르다. 어떤 이야기로,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 지 기대가 된다. 예술 교육가는 아티스트로서 교육가로서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추어야하는 섬세함과 세심함을 요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참여자와 소통하며 변용해 나갈 줄 아는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해야하는 것이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운영해 나가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기획을 하면서 바라보는 전체적인 시각, 소비자로서의 참여대상의 욕구 파악 그리고 교육가로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려는 열정 등 오늘도 우리는 꿈다락에 담긴 꿈 꾸러미를 ‘룰루랄라~’ 배달하고 있다. 제주 전역에서 많은 예술 교육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 해결해야할 고민꺼리를 안고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그 작은 전투 경험들이 모여 제주문화예술교육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게 되었든 사람에게서 영감을 얻게 되었든 앞으로도 가슴 뛰는 연극교육을 해 나가고 싶다.
지치지 않고 차근차근 즐기며⋯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을 기대하며⋯ 또 금방 사랑에 빠지리라.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연극교육을 하는 날 바람둥이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내 삶의 동화를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