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내리쬐는 7월의 뙤약볕 아래, 창조적 글쓰기 1차 사업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오랜 시간 여성복지 분야에 종사하며 나는 늘 똑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왔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따스한 본성을 되살려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에서 되풀이하던 그 물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알려 주었다.
나는 계약만료를 핑계 삼아 근무하던 상담소를 그만두고 사람들이 편히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 안에서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는 대화를 위한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하고 있고,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겠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가슴속에만 간직했던 ‘연주’라는 꿈을 오카리나를 통해 이뤄 나가고 있다.

올해는 또 하나의 치유방법으로 창조적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강사에 대한 믿음으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고, 이만큼 오게 되었다. 강사와 함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제주문화예술재단에 제출하였다. 다행히 재단에서는 창조적 글쓰기 사업을 선정해 주었다. 4월, 첫 발을 내딛은 창조적 글쓰기 1차 교육은 좌충우돌의 과정 속에서 어느 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글쓰기 교육생 모집은 신문, 온라인 카페, 기관 홈페이지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글쓰기 홍보를 보고 문의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목표했던 수의 인원이 신청하였다. 사업 계획 당시, 적정 교육인원을 15명 정도로 예상했지만 진행하면서 ‘과연 글쓰기 훈련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왜냐하면 자신을 타인의 앞에서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한 치유경험을 바라고 있었고, 자신들의 기억이 사라지는 마을의 역사이므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창조적 글쓰기 신청자들에게 첫 교육 안내 연락을 하고, 교육생들이 읽을 자료집을 제작하고, 글쓰기 교육 참여자들의 이름표와 출석부를 만드는 것으로 교육 준비를 끝마쳤다. 눈앞에 놓인 이름표들을 바라보면서 개인의 내적 치유와 공동체 회복이라는 교육의 목표에 다가설 수 있기를 바라며 에너지를 담았다.
글쓰기 교육의 참여자들이 참여한 동기는 매우 다양했다. 글쓰기 교육을 통해 자신의 내적인 치유를 하고 싶은 사람, 어려서부터 글쓰기에는 영 소질이 없어 이번 기회에 글을 잘 써보리라 다짐하고 온 사람, 나이 일흔에 자신의 삶을 다시금 정리해 보고 싶다며 신청한 사람, 마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주다운 건축을 설계하고 싶다는 사람, 글로써 우리 토종씨앗으로 재배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은 사람 등. 저마다 참여한 이유도 독특하고 다양했다.
교육이 시작되고 한 주, 두 주 흐르면서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했던 글쓰기 방향과 다르다는 이유에서 중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모두가 끝까지 교육 과정에 함께했다면, 포기한 사람들도 자신을 닮은, 마음이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떤 분은 1회 교육을 받고 난 후 밤샘 고민 끝에 전화하는 것이라며 나를 찾아왔다. 잘 쓰지도 못한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쑥스러워 글을 쓰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글쓰기 과정을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용기를 얻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무나 훌륭한 자신의 글을 창조해냈다.

창조적 글쓰기 교육은 1, 2차로 나누어 각각 15회로 구성하였다. 1차는 상반기에 진행이 되었고 2차는 하반기에 진행될 예정이다. 1차 글쓰기 교육은 “왜 우리는 읽고 써야하는가?”라는 주제로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개론을 이야기하며 시작되었다. 각 회기마다 돌아가면서 자료집을 읽고 다양한 글쓰기 방법의 예시들을 접하였다.
자료집을 읽고 난 후에는 각자의 삶과 연결하여 글에 대한 느낌과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첫 번째 교육이 끝나고 글쓰기 과제가 주어졌다. 첫 시작인 만큼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 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최근 관심사 혹은 삶에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 중에서 떠오르는 것을 주제로 하여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 다음 회기에 만나 자신의 글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여자들이 써 온 자기소개서는 각자의 삶의 색이 묻어 있는 솔직담백한 글들이었다. 참여자들 중 대다수가 글을 처음 써 봤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는 것에 쑥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글을 써 오자 이에 부담을 느낀 한 참여자는 즉석에서 글을 써 내는 순발력을 발휘하였고,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내심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창조적 글쓰기의 궁극적 목적이 우리 안에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위한 창조성과 자발성을 기르기 위함에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쓴 글을 전체 참여자들 앞에서 발표하고, 글에 대한 피드백들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뿌듯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들을 풀어 낸 공감이 되는 글들을 듣고 나면, 각자의 이야기로도 이어지곤 했다. 기억을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여자들은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더 끈끈해지고 친밀감을 느끼는 관계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참여자들은 점차 아팠던 기억들, 상처를 받았던 기억들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특히 태풍 무이파를 주제로 쓴 한 참여자의 이야기는 모두의 기억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사건, 사고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 잊지 못할 큰 상처를 남긴 태풍 무이파는, 천재지변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피해가 더욱 컸었다. 참여자 모두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런 아픔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보았다.

창조적 글쓰기 교육과정에는 ‘북 아트 만들기’ 시간도 있었다. 자신이 손수 만든 책 속에 무언가를 채워 간다는 상상은 책을 만들기도 전에 참여자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강사의 설명에 따라 서로 잡아주고 도와가며 세상에서 유일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참여자들은 “너무 아까워서 못 쓸 것 같다. 자작시를 적어 놔야겠다. 그림일기를 써야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북 아트 교육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교육 외 시간에 개인적으로 만나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며칠 뒤 참여자 한 분이 자신이 만든 책에 그림일기 쓴 것을 보여 주었다. 책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연말에 조그마한 전시회를 열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삶의 과정 중 겪게 되는 아픔과 상처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되고, 시간만이 약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감정은 잘 어루만져 흘려보내지 않으면 곪아 썩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참여자들은 이번 창조적 글쓰기 교육 사업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대면하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묻어 두었던 아픔, 슬픔, 죄책감, 수치심, 변명 등을 꺼내 놓았다.

창조적 글쓰기는 우리의 경험을 기억 밖으로 꺼내놓는 방법 중의 한 가지이다. 참여자 각자는 자신의 쓴 글을 읽어 가며,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듯 내면의 직관적 목소리를 듣는 치유의 경험들을 하였다. 그리고 참여자들 개개인이 경험했던 삶의 주제들이 공유되면서 이것이 더 이상 개인적인 경험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음도 알게 되었다.
또한 치유의 힘과 지혜가 ‘창조적 글쓰기 교육’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솟아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창조적 글쓰기 훈련이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는 생명의 씨앗이 될 수 있고, 그 씨앗에 새로운 의미가 자라도록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