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환 인근,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살다보니 마을 어귀를 산책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자연이 만든 그대로의 생태적이고 미학적인 흔적들은 때로 위험한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또 그만치 야성적인 예술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초대를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마을 친구들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던 유년기의 추억들을 소환하는 날이면 그 서로 다른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삶이 건강해지는 든든한 울타리를 얻는 기분이다.

‘하논에 짓는 우리들의 아지트’도 사실 마을 친구들과 수다를 하다 찾아낸 추억 만들기에 대한 방식이다. 그리고 그 추억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교육’이라는 성장양식이 과정에 있다. ‘위험’이란 개념에는 규칙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고 보다 거칠고 자연적인 그대로의 재료들을 발견하여 이용하며, 스스로의 야생성을 끄집어내는 재미와 자유 속에 각자의 질서를 찾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여기에는 또래집단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각력과 감수성이 차별적으로 존재하기에 조급하게 우리(프로젝트 멤버)의 형식을 지도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그래서 수업 현장은 어쩌면 매우 산만하고 무질서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놀이’라는 요소를 기반으로 또래집단의 사회성과 협동심, 스스로의 결과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해가는 과정을 세심히 관찰한다면 그들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놀이를 통해서라면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자연과 교감하고 마음대로 즉흥적 일들을 벌일 수 있는 창의력을 발휘한다. 이때 강사는 여러 기회를 열어주고, 아이들이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에 동참하며 풍부한 감성을 격려하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끔 인간은 현재 시점에서는 인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그 순간이 떠오르며 이해되거나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의식과 무의식의 뇌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진행했던 <자연악기 만들기> 프로그램 중에는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는 장면 하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자연악기를 만들기 위해 우선 선행되어야 하는 활동은 ‘자연의 소리 모으기’였다. 미션을 내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바람의 소리라며 나뭇가지를 들고 왔는데 나뭇잎 소리를 듣고 가져온 것이었다. 이후 우리는 ‘바람’ 이라는 모티브를 소리 작업으로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한 중견작가의 설치작품을 아이디어로 제안, 아이들과 함께 바람 모으기를 시작했다. 바람의 소리를 모을 형태를 만들고 그것에 장대까지 설치하고 나니 기다릴 일만 남았다. 그때 우리 클래스의 최고 개구쟁이인 두 아이의 대화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저기 흔들리는거 보이지? 조게 있쟈나이.. 바람이 온다는 뜻이야..”
(잠시 고요)
“난 내 몸으로도 느낄 수 있는데..”

글쎄... 단지 강사의 해몽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는 믿는다.
몸으로 느낀 것, 그리고 흔들리는 것의 작용을 이해한 이 아이들의 세포에 각인된 ‘바람’은 어느 날에 다시 추억으로 불려질 ‘바람의 소리’로 남게 될 것이라고, 혹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느 날 발견될 즐거운 어린 시절의 아지트 놀이 시간으로서 남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세계적으로도 연구가치가 있는 국내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인 ‘하논분화구’의 역사와 생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봄으로부터 가을까지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이번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역시 ‘아지트’ 이다. ‘공감’ 이라는 성장에 있어 필수적인 감성이 베이스가 되는 또래들의 놀이공간! 그리고 아이들의 협동이 자연스러워지는 사회성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매개인 마음의 아지트! 아이들은 속삭이다. 서로에게.

“우리 비밀 얘기 하지 말기!”
“응? 무슨 비밀?”
“안 보이는 곳에서 남의 말 하지 않기 말이야...”

문화예술교육이 충분한 놀이가 되는 준비, 가볍게 다가가 감성의 터치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도 산남 최초의 성당 터이기도 한 하논분화구의 태곳적 자연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한다. 어른이기에 많이 부족한 우리 선생님들은 실은 너희들과 놀아서 더 행복한 시간임을 고백하며.